해충 박멸, 보안 요원 등의 일을 하던 평범한 제약 회사 직원이었다. 돈이 되는 일을 찾아 아무거나 해왔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오전 8시면 회사에 출근해 이것 저것 챙겨서 여기 저기 일하러 다녔다. 나이 스물 일곱이었으며, 일이 바빠 다른 생각할 틈도 없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구원투수 피터 모일란의 이야기다.

모일란은 이렇게 바쁘게 사는게 좋았다. 멍청하고, 게을러서 놓쳐버린 그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면, 무엇이 됐든지간에 이렇게 바쁘게 사는게 좋았다. 10년 전, 그는 호주 야구 유망주로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채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구단에서 방출당하고 말았다. 야구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짐 모리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루키」를 보고 또 봤다. 나이 서른 다섯에 엄청난 광속구로 메이져리그에 데뷔한 늦깍이 루키 짐 모리스를 보며,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되리란 상상을 하며 말이다.
「허무했습니다. 처음 야구할 때 온 힘을 쏟지 않았었죠. 제게 온 모든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습니다. 」
이제 모일란은 호텔 방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메이져리그에서 가장 가능성없는 선수였지만, 이젠 한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었다. 독특한 사이드암 피칭으로 말미암아 지난 시즌 가장 뛰어난 구원투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 독특한 사이드암 피칭... 사이드암으로 던지게 된 사연을 찾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모일란은 두 번의 등 수술을 받았고, 두 번째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는 오버핸드로 공을 던질 수 없게 되었다. 제약회사 일을 하며, 주말마다 호주 블랙번 오리올스 투수로 야구를 다시 하게 된 모일란은 공을 던지면 등이 계속 아파서 결국 1루로 포지션을 옮겼고, 1루수로 뛴지 3년이 지나서야 더이상 등이 아프지 않았다. 수술 덕에 새로운 방법으로 공을 뿌리게 된 것이다.

회전, 회전, 회전. 모일란은 투구폼과 공에 심한 회전을 가미했다. 혼자 자체 투구폼을 완성해 결국 마운드에 오르게 되었지만, 야구에 관심없는 호주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러나 스카우터의 눈은 모일란을 지나치지 않았다.
「자네 얼마나 공이 빠른지 알고 있나?」
「몰라요」
「94마일이야!」
태어나 한 번도 94마일이란 강속구를 뿌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일란은 스카우터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어찌 됐건 그 스카우터는 모일란에게 WBC 호주 대표팀 트라이아웃에 와보라고 했다. 모일란은 호주 대표팀 제안 역시 장난으로 넘겼다.
그러나 호주 대표팀 전력은 형편없었고, 모일란은 어찌 됐건 호주 대표팀에 발탁됐다. 2006년 3월, 짐을 바리 바리 싸, 미국 올랜도로 갔다. 모일란은 계속해서 제약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이었다. 즉, 2주간 미국 여행하는 셈이었다.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주 포지션 1루수] 미디어 가이드에 나와있는 모일란의 리포트.
호주의 첫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관중이 아무도 없었다. 모일란은 마운드에 서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두번째 상대는 베네주엘라였다. 역시 야구 강국답게 베네주엘라 팬들로 야구장이 가득 찼다. 시끌 시끌한 야구장. 경기는 5회. 드디어 모일란에게 기회가 왔다.
「얼마나 떨던지..하긴 10년 전 루키리그 이후 그동안 호주 아마추어들만 상대했으니 얼마나 떨렸겠어요. 마운드에 올라가서 직구만 내리 던졌는데, 모두 삼진이었습니다. ㄷㄷㄷ했죠」- 필 스톡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 투수이자 호주 대표팀 동료
첫 타자 바비 아브레유 삼진, 두번째 매글리오 오도네즈 삼진, 세번째 라몬 에르난데즈 삼진. MLB 올스타로 이루어진 베네엘라 클린업 트리오를 모두 삼진으로 잡았다. 삼진 4개, 볼넷 5개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 날 저녁, 모일란은 호텔 방에서 전화 폭주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날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가 끝나면, 다시 20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돌아가야 한다. 모일란은 당연히 에이젼트가 없었다. 가족들과의 이야기없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못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제가 얼마만큼 잘 던지는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렸을 때, 루키리그에서 전전하다가 방출됐고, 호주에 돌아와서는 주말에만 야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메이져리그에 간다구요?」
역시나 미네소타 트윈스가 가장 먼저 연락해왔다. 그렇지만 안좋은 기억만 가득한 그 곳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 다음 제안을 해온 곳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애틀랜타의 팜시스템과 구단 경영이 마음에 들었다. 3만 달러를 받고 애틀랜타에 입단하기로 했다.
애틀랜타 캠프에 합류하자 마자 모일란은 두각을 나타냈다. 94마일 사이드암 직구와 슬라이더로 오른손 타자들을 요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4월 12일 메이져리그로 승격됐고, 이후 트리플A와 메이져를 오가며 시즌을 마쳤다.
지난 2007 시즌, 모일란은 폭주했다. 메이져리그 전체 1위의 방어율 1.80을 기록했다. (최소 80이닝 던진 투수들 가운데 1위) 피안타율 .208의 마구로 애틀랜타 불펜을 이끌었다.
「내가 본 투수들 중 가장 볼이 지저분해」 - 바비 칵스, 애틀랜타 감독
워~워~ 전성기의 그렉 매덕스를 11년간 데리고 있던 감독이 매덕스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보통 칭찬이 아니다. 만약 새로 마무리를 맡게 된 라파엘 소리아노가 무너지면, 마무리를 맡길지도 모를 일일 것이다. 포수 브라이언 맥캔 역시 「지난 시즌 우리팀 MVP」라며 거든다.

오전 8시부터 연습이 말이 되느냐며 불평하던 17살의 모일란은 이제 없다.
「솔직하게 병진이었죠. 저때만해도 제게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죠. 그래요 제겐 재능이 없었습니다.」
이제 만 스물 아홉이 된 모일란에게 재능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팀메이트들 웃기기.
「제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에릭 바나 (호주 출신의 영화배우로 주요 출연작으로 블랙호크다운, 트로이, 헐크 등이 있다.) 정도는 되야 절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좋다고 깔깔 거린다. 헐크가 모일란이 된다고? 안될 게 뭐있나. 모일란은 꿈에 그리던 일을 하고 있는, 꿈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원문 보기 : http://sports.yahoo.com/mlb/news?slug=jp-moylan021808&prov=yhoo&type=lgns
1978년 12월 2일 호주 아따데일 출생
1996년 미네소타 트윈스 입단
1997년 두 시즌 만에 방출
200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7 시즌 성적
5승 3패 8홀드 1세이브 방어율1.80
세상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MLB춘같은 사람도, 피터 모일란같은 사람도 있다.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처럼 10대에 메이져리그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고, 모일란처럼 나이 서른에 꽃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살자.
살다보면 우리도..
메이져리그 마운드에 선다? ㅋㅋㅋ









